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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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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문화유산의 새로운 기록자

여성일보




2018년 한 해 동안 박물관, 미술관, 화랑, 대안공간 등 새로운 전시공간이 몇 곳이 생겨났나? 또는 2018년 중요했던 미술계 이슈와 전시회는 무엇이 있었나? 이런 내용이 궁금하다면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서울아트가이드 매년 1월호를 보면 궁금점이 해결된다. 전시공간의 변화는 연구소 자체 조사에 의해서, 이슈와 전시회는 미술평론가, 큐레이터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집게하여 발표한다. 한 해의 미술계 활동을 수집, 정리, 통계를 내고 평가하여 기록을 남겨준다. 

 김달진관장(소장)은 두가지 커다란 축으로 일을 한다. 연구소는 서울아트가이드 잡지를 발간하고 www.daljin.com을 통해서 빠른 정보를 전달하고 메일진,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카톡 등 SNS을 통해서 소통시킨다. 박물관은 미술자료, 아카이브를 수집해서 한국미술정보센터(자료실)를 만들어 도서, 자료를 열람서비스하며 연구 결과는 기획 전시를 꾸며내고 학술도서를 출판하여 문화유산으로 남긴다. 김달진 미술연구소와 박물관은 미술계에서 가장 공신력이 큰 주요한 기관으로 인정받고 ‘김달진’은 하나의 브랜드이다. 

 미술계에서 “김달진을 모르면 간첩이다” 라는 우스개 소리는 진부하다. 김달진은 “살아있는 박물관”,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애칭을 이번 방문에서 실감하며 라키비움을 실현해가는 김달진은 커다란 산이었다. 2013년부터 박물관에서는 <</span>라키비움프로젝트 > 7년차 교육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도서관+기록관+뮤지엄의성격을복합한라키비움(Larchiveum)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앞으로 목표인 출판물의 도서관(Library), 기록자료의 기록관(Archive), 실물자료의 박물관(Museum)을 복합적으로 통합한 라키비움(Larchiveum)을 이루어가고 있다. 우리 미술계에서 자료의 수집, 정리, 기록, 활용을 통해서 새로운 영역을 펼쳐가고 있는 아트아키비스트 김달진관장을 찾아 서울 세검정 삼거리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했다. 


  김달진, 교과서에 수록되다

 김관장은 1978 - 80년 월간 전시계 기자를 거쳐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일하며 자료실이 만들어졌고 첫 자료담당자로 1996년까지 근무하고, 이어 2001년 까지 가나화랑(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을 역임했다. 1999년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논문으로「국내 미술자료 실태와 관리 개선 방안 연구」를 시작으로, 그 후 세미나에서 미술자료실 및 아카이브의 국내실태조사를 여섯 번 발표하였다. 본인의 이름으로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 개소하여 2002년 1월호로 미술잡지 <</span>서울아트가이드 창간>을 창간하여 최고의 미술정보잡지로 인정받았다. 2002년 www.daljin.com시작하여 빠르고 풍부한 콘텐츠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미술사이트로 성장하였다.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하여 전시와 병행하여 『미술정기간행물 1921-2008』, 『한국현대미술 해외진출 60년』, 『외국미술 국내전시 60년』, 『한국미술단체 100년』, 『한국근현대미술교과서』, 『한국미술공모전의 역사』, 『한국미술 전시공간의 역사』,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20세기 한국화의 역사』『한국 미술평론의 역사』등을 펴냈다. 단순히 오래된 자료를 모아 진열해놓은 전시보다는 학술도서 발간에 힘을 기울였다. 연표작성,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등을 통해 설문조사, 소논문, 구술인터뷰, 세미나 등을 병행하여 학술적인 가치를 높인다. 이런 성과로 2014년한국미술 저작.출판상(김세중기념사업회), 2019년 2018 한국박물관.미술관 우수활동상-출판물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현재는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회 위원장이며 감사, 한국사립박물관협회, 서울특별시박물관협의회, 종로구사립박물관협의회 세 단체 이사를 겸하고 있다. 2016년부터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정보 기록학과 겸임교수로 6학기를 강의했다.

 2010년부터한국미술 기초자료 구축 및 활성화사업으로『한국미술단체자료집 1945-1999』,『한국미술전시자료집Ⅰ:1945-1969』,『한국미술전시자료집Ⅱ:1970-1979』, 한국미술전시자료집Ⅲ:1980-1989』『한국미술 전시자료집 Ⅳ 1990-1999』 연구프로젝트로 펴냈다. 2010년 『대한민국미술인 인명록Ⅰ』은 1850년 이후 한국근현대미술인과 비창작미술인을 포함 4,900여명, 2018년 『미술인 인명사전』은 6,000명을 수록하였고 현재 PDF로 서비스하여 누구든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2013년 11월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창립식을 가졌고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현재 협회는 뮤지엄아카이브분과, 학술분과, 전시분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는 한국의 시각예술분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예술분야와 기록학 분야 연구자들의 협의체로 정확한 한국예술사 구성을 위해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고교시절 잡지에 명화 한 장을 뜯어 모으던 취미가 발전하여 아트아키비스트의 선구자가 되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지금도 특강을 가게되면 왜 미술자료를 수집했느냐?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데 40여년전 서양의 명화 실제 작품을 국내에서 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여성잡지에 나온 인쇄된 그림 한 장을 뜯어 모아 수집하던 취미가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아키비스트’ 호칭은 2013년 중학교 도덕교과서②(금성출판사)에 <</span>직업 속 가치탐구> 코너에 나를「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만들다-김달진」에서 아키비스트란 직업으로 소개되었다. 부연설명에는 그 뜻이 ‘작품 및 작가에대한 기록이나 전시, 미술품에 대한 기록을 관리·감독하는 사람’으로 풀이되어 있다.

  김관장은 이 부분을 ‘집안 어른들이 매일 잡지 신문 쪼가리 오려모아 무엇이 될거냐? 고 염려했는데 새로운 일을 만들어 가다보니 교과서에 수록되는 가문의 영광까지 얻게된 것 같다’ 고 웃었다. 한국미술계에 새로운 개척자로서 정부에서 시상하는 2010년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상), 2016년 홍진기창조인상(유민문화재단/ 중앙일보사)을수상했다.


▲박서보의 기록과 예술 강의 20190628.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공유화

김달진 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연대가 가장 오래된 『서경대전(書經大全)』은 300년이 넘었으며 책 속의 “강희정유신전(康熙丁酉新鐫)”과 “욱욱당장판(郁郁堂藏板)”이라는 기록을 통해 청나라 강희(康熙) 56년인 1717년 욱욱당에서 출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아동화담』 128년전인 1891년 일본 학령관에서 이시이 타미지가 한국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기산 김준근 그림을 칼러 삽화로 편집하였으며 2015년 영인본을 만들었다. 『서화협회 회보』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한국사람이 만든 최초의 미술잡지로 1921, 22년 2회 발행된 희귀본으로 지난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근대서화”전시에 대여 나갔다. 『오지호 김주경 2인화집』은 1938년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최초의 원색화집으로 1930년대 인상주의 화풍의 정착을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白耳義現代美術展』 팸플릿은 1952년 한국전쟁 중에도 덕수궁미술관에서 벨기에현대미술전이 열렸다는 것을 증거물이다. 白耳義(백이의)는 벨기에의 한문표기이다. 1929년 조선박람회때 조감도, 기념메달, 입장권과 특별입장권 2종, 스템프 찍힌 사진 9장도 있다. 소장품의 양과 질, 종류를 일일이 나열할 수 없으며 국공립 뮤지엄, 갤러리에서 소장품 대여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특별한 소장품은 우리나라 근현대미술 대표작가 350여명의 D폴더 파일이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도록이나 화집은 복수 제작이라 많은 미술관, 화랑,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으나 잡지, 신문기사 스크랩을 모아 놓은 곳은 없어 작가 본인도 찾는다. 실제적으로 오지호, 유영국, 천경자의 유족, 큐레이터, 외국의 연구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관장실 한 벽면을 가득 메운 서가에는 이중섭, 김환기 7권, 천경자 6권, 백남준, 이우환 5권 등이 즐비하고 내방자들은 이 실체를 보고 언론보도, 소문이상에 깜짝들 놀란다. 김달진관장은 소장품을 공유화하기 위해 매월 서울아트가이드에 <</span>이 한 점의 자료> 83회, < </span>한국미술대표작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 아카이브> 52회차 소개하고 있다.


'아카이브 지원이 필요하다'

 앞으로 하고싶은 일에 대한 질문에 공간부족, 데이터베이스화에 재원부족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금 미술계의 심각한 천경자 미인도, 이우환 위작 논란도 안목감정과 과학감정 모두 불신을 당하고 있는 상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품이력(Provenance)과 같은 객관적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2010년에 정부에서는 국립예술자료원을 개원하였다가 4년만에 다시 후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합병되어 부서로 축소시켰다. 이제 아트아카이브는 국가의 유산이고 공공의 기록물이라는 차원에서 적극적인 정책의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이나 최근 화두인 ‘미술한류’도 새로운 아카이브 시스템과 정확한 정보 제공에서 출발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올바른 아트아카이브 구축은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얻기 위한 첫걸음인 동시에 우리의 오리지널리티 확보와 위작 시비를 줄일 수 있는 당면과제이다. 그러기에 아트아카이브의 활동은 단순히 자료를 보존한다는 일차적 역할에서 나아가 한 나라의 미술문화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고취할 수 있는 기반이다. 여러 문제가 사회적인 치매증상으로 이어져 더 큰 문제를 초래하기 이전에 정부는 많은 지원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아직도 문화예술정책이 외형적인 비엔날레에 몇억원 지원해주고 관람객 숫자 놀음에 집중하고 후대에 문화유산을 제대로 남기는 것은 미약하다. 그의 어록인 “기록해야 역사가 되고 보존해야 아카이브가 된다”

아카이브 시스템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자 문화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출처 여성일보 나다은 편집국장: http://dailywoman.co.kr/news/view.php?idx=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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